한국에서 세부로 출국하기 전 많은 서류를 떼게 되는데, 그 중 저에 대한 증빙서류들을 필리핀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증빙"을 받아야 합니다. 위조본일수도 있는 데다가, 요근래 국제결혼에 대한 안좋은 소식(폭행 등)이 전해지면서 이런 규칙들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업체를 통해 진행한 관계로 대략적인 흐름에 대해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1. 마닐라 한국 대사관 방문하기
한국에서 출력 및 발급받은 서류들은 필리핀에서 결혼서류 작성은 물론 여러가지 이유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서류들의 증빙을 받고 또 국제결혼에 대한 인터뷰(30여분 정도)를 받기 위해 마닐라로 방문해야 합니다. 세부에는 한국 대사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부에서 마닐라까지는 비행기로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처는 비행기를 처음 타봐서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출발할때는 창측이었는데, 돌아올때는 복도쪽이라서 조금 뾰로통해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마닐라 공항에서 한국 영사관까지는 30~40여분 소요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노란택시였는지, 흰택시였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공항 앞에 택시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앞에 폴리스가 있었습니다. 근처에 줄이 서 있었고 저도 그리로 가서 택시를 잡아 탔었습니다. 아침을 굶고 출발한 탓에 공항 건너편에 있는 맥도날드에를 가려고 했는데, 도로를 횡단할 수가 없어 택시로 우선 맥도날드까지만 가서 아침을 먹고 영사관으로 출발했습니다.
대사관 앞에 가니 둘 중 한 명의 신분증을 제시하고 명찰을 달고 들어가라고 합니다. 처의 ID카드를 맡겨놓고 들어가니 짐검사를 하고 건물안으로 들어가 미리 작성해온 서류를 제출하려고 하니 그 곳에서 일을 담당하시는 듯한 제복입은 아저씨가 새 문서를 주면서 양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다시 쓰라고 하더군요). 시키는대로 다시 쓰고 있는데, 처가 울상이 되더니 뭔가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저와 처 단 둘이 마닐라로 갔던 상황이라 도움을 구할 곳이 없어 세부에 있는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라고 하니, 출생증명서가 없는 줄 알고 그러고 있더군요. 알고보니 제가 들고 온 서류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한국대사관에 가서 국제결혼관련해 방문했다고 하면 일련의 서류뭉텡이와 번호표를 뽑아줍니다. 상당히 친절하게 알려주므로 시키는대로 다 적고 접수를 하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9시 반인가 10시부터 접수를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11시인가 11시 30까지만 접수를 받아 시간을 놓치게 되면 마닐라에 다시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라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우선은 접수를 해야 하니 접수 시작 시간까지 기다리고, 접수를 완료한 이후에 오후 세시부터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으니, 데이트를 하러 잠시 밖으로 나와봅니다.
2. 마닐라 구경
세부와 마닐라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대사관 근처의 마닐라도 그렇게 번화가는 아니었습니다. 택스로 조금 가니 마켓마켓이라는 대형몰이 나왔는데, 그 몰에 가서 점심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필리핀에서의 "몰"은 한국의 영등포에에 있는 타임스퀘어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물론 크기는 타임스퀘어보다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큰 건 하나 봤고, 그보다 작은 건 서너개 정도 봤었습니다. 몰과 백화점이 반반씩 붙어있는 구조이고. 입구에서는 역시나 시큐리티들이 소지품을 일일히 검사합니다. 비단 몰뿐만이 아니라 작은 상점들도 시큐리티들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더군요.
몰안은 제법 시원했고, 사람도 많았습니다. 6층 규모였었는데 에스컬레이터와 엘러베이터는 물론 다양한 종류의 상점들이 가득했습니다. 가장 꼭대기에는 영화관까지 마련되어 있더군요. 점심을 먹기는 이른 시간이고, 몰 밖은 더운 데다가 지리를 모르니 이동조차 할 수 없어서 결국 안에서 4~5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처음 몰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눈이 초롱초롱해지던 처는 1층을 한 바퀴 돌아보더니 머뭇머뭇합니다. 왜 그런가 싶어 가만히 지켜보다 "up stair?" 라고 물어봤더니 "really?"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아마도 윗층에 올라가보고 싶은데, 제 눈치를 봤던 것 같더군요.시간은 많고 지리를 모르니 밖에 나갈수도 없는 상황이라 좋아라하는 처의 손을 잡고 마켓마켓을 제대로 구경하기 시작합니다.
층층마다 서서 하는 귀여운 행동이... 어렸을 때 저도 그랬던 것 같은데, 창문쪽으로 가면 그 밖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겁니다. 저도 가만히 같이 지켜보다가 조금 질리면 다시 돌아다니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열심히 움직이다보니 배가 제법 고픕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먹은 현지음식들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닭고기를 좋아하다보니 졸리비에 가서도 가장 싼(100페소 이하)음식도 먹을만은 했는데, 지속적으로 그것만 먹게 된다면 그건 정말 별로일 것 같았습니다. 처와 처음으로 같이 먹었던 음식도 장인어른을 뵈었던 졸리비에서의 치킨한조각과 밥한주먹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음식을 깨작이든 먹고 있기에 입이 짧은가 생각을 했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한데 마켓마켓에 "토니로저스"가 있어 그 곳에 가서 150~250페소(4,000~6,500원)하는 음식을 시켜서 먹었는데, 깔끔하게 비우는 겁니다. 음식량이 많았는데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운 걸 보니 눈물이 좀 핑 돌 정도로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서 닭고기를 먹고 싶으면 어머님이 닭발을 사오셔서 해먹곤 했다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얼굴에 그늘이 가득한 걸 보면 마음이 여러모로 편치 않았습니다.
밥을 먹고 조금 더 구경을 하다가 늦는 것보다 조금더 일찍 도착해서 기다려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대사관으로 돌아왔습니다.
3. 영사관 인터뷰
가서도 한 시간 남짓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자리에 앉아 손장난을 치면서 웃다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습니다. 인터뷰 시간이 다가올수록 저와 같은 국제결혼 부부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5~20여 커플이 모였는데 저보다 어린 분들은 보이지 않더군요.
인터뷰시에 영사가 물어보는 예상질문과 답변을 받아 열심히 외우고 있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처의 고향이나 생일, 그리고 취미 등 대여섯가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튼.. 안내받기로는 처와 같이 들어가서 인터뷰를 한다고 하는데, 남자들만 먼저 들어오라고 합니다. 처를 밖에 두고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니 많이 뻘쭘하더군요.. 왜 그 분위기 있쟎습니까. 모르는 남자들인데 공통적인 목적이 있어 한 곳에 모여있는 엄청난 서먹함..;
조금 기다리니 영사가 들어오고 이런저런 말을 해주기 시작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의 특징과 그들이 한국인과 결혼하는 이유 등... 되도록이면 현실을 알려주려는 느낌이 강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저와 같은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고, 또 얼마나 많은 소문과 현실을 겪었을까 싶어 주의깊게 들어두었습니다.
이런 저런 말을 해준 뒤 한 명씩 호명하면서 거주지와, 직업 그리고 처를 만나게 된 계기를 한명씩 순서대로 물어봅니다. 이혼하신 분들은 전처와의 관계나 이혼 사유, 그리고 전처가 낳은 아이까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Q. 직업이 뭔가요?
Q. 결혼하면 어디에서 살게 되나요?
Q. 어떻게 만났습니까?
Q. 전처와 이혼한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Q. 자제분들이 국제결혼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습니까?
얼추 위와 같은 내용들을 물어본 뒤 답변을 듣고 접수시 제출했던 여권을 되돌려 줍니다. 이 때 무슨 종이에 사인을 했는데, 별 중요한 내용이 아니어서 내용은 잊어버렸네요.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면 이제 처가 인터뷰를 받을 차례입니다. 무슨 내용을 물어보는지는 들어보지 못해서 자세히 모르겠지만, 남성들의 인터뷰 시간에 비해 50%정도 짧은 시간만 들어가서 일찍 나오는 걸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렇게 인터뷰가 끝나게 되면 1,000페소를 내고 인터뷰를 마쳤다는 인증서(?)를 하나 받습니다. 잊어버리면 안되니 고이고이 간직해서 가방에 넣고 대사관을 나섭니다.
4. 선물(곰인형, 한국어교재)
대사관을 나오니 오후 다섯시정도여서 세부로 돌아가는 항공편인 10시 50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었습니다. 처가 아까 그 몰을 너무 좋아하기도 했고, 근처에는 저녁을 먹을 곳도 없어서 밥도 먹을겸 다시 마켓마켓으로 향했습니다.
그때가 크리스마스 몇 주 전이어서 여기저리 트리같은 것도 걸리고 선물들이나 귀여운 것들이 많았는데, 유독 많이 만져보는 것이 곰인형이더군요. 곰인형들 종류도 한 두가지가 아닌데, 이 곳 저 곳, 각 층마다 곰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어 만지막만지작하는 모습이 안되 보여서 "저걸 사줄까?" 라고 물었더니 "비싸"라며 돌아섭니다.
가격대를 보니 200페소(5,000원)인데, 아무리 버릇이 나빠진다고 물건을 사주지 말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저건 사줘도 되겠다 싶은데, 몇 번을 물어봐도 비싸다며 도망을 갑니다..-_-; 설득을 하자니 영어도 한계가 있고 포기했는데, 저녁을 먹던 도중 좋은 생각이 납니다.
저녁은 음식 가격대가 비싸 사람들이 많이 없는(제 추측입니다) 토니 로저스에 가서 아까보다 더 비싼 음식을 시키고 온종일 돌아다녀서 고된 몸을 앉힌 뒤에 이렇게 말을 해주었습니다. "멏일 뒤면 난 한국으로 돌아간다.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인데 내가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곰인형을 사줄테니 그 곰인형이 나라고 생각해라"라고 되도 않는 영어를 하니 웃으면서 알았다고 합니다...얼른 저녁을 먹고 곰인형 파는 곳으로 가서 갈색 곰인형을 골라 사주었습니다. 정말 좋아하더군요..
결혼 후 한국에 오기까지 석달을 혼자서 보내야 하는데, 그 동안 한국어 공부를 하라고 몰 안에 있는 서점에 가서 140페소(3,600원) 책을 두 권 샀습니다. "SPEAK KOREAN 영어 한국어 따갈로그"라는 책이었는데, 한권은 처한테 주고 한 권은 제가 가지고 귀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어 교재는 세 권이 있었는데 세 권 모두 한국어가 병기된 책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영어, 한국어발음, 따갈로그만이 표기된 책이었습니다.
How are you?(영어), An-nyong ha-se-yo?(한국어발음), Kumusta?(따갈로그)
그래서 아래와 같이 한국어를 책에다가 병기해 준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How are you?(영어), 안녕하세요(한국어) )An-nyong ha-se-yo?(한국어발음), Kumusta?(따갈로그)
이후 숙소에 돌아가서 꼬박 8시간 정도를 한국어를 모두 병기해서 결혼식날 주었었는데, 무척이나 좋아하더군요.
5. 다시 세부로
처와 같이 다니면서 필리핀 사람들이 성격이 느긋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부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는 와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부에서 마닐라로 올 때 짐으로 부치지 않고 들고 탔던 3단 소형 우선에 차지를 붙인 게 괘씸한 데다가 그걸 반대로 마닐라에서 세부로 가지고 가려면 또 차지가 붙을 것 같아 찾지 않고 마닐라 공항을 나왔는데 비가 한 두 방울 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비는 한 두 방울 내리는 데 쉽게 그칠만한 비는 아님을, 게다가 더 많이 올거라는 예감이 들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합니다. 한국의 교통 상황을 생각하고 공항에서 대사관까지 30여분이 채 걸리지 않았기에 느긋하게 돌아가려 했는데 왠걸... 택시 정류장에 사람이 100미터는 넘게 줄이 서 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지 못하면, 마닐라에서 숙소를 찾아야 하고 캔슬된 비행기삯은 다시 받을 수도 없는데다가 추가로 비행기 비용이 더 들게 생겨서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처의 얼굴을 보니 정말 평화롭습니다.. 100미터가 넘는 줄을 기다릴 수 없어서 다른 곳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단속이 심한 이유인지 세워주지도 않는 데다가 퇴근 시간이라 빈 택시도 없어서 택시를 잡기 위해 다른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같이 걸어가는 와중에 저는 마음이 급하니 처의 손을 끌고 이동하는데, 처는 여전히 느긋하게 걷고 있더군요..;; 서두르라(hurry up)고 말하니 그제서야 조금 서두르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에도 20여분을 헤맸지만 택시를 잡을 수는 없었고, 길가에서 서있는 저희들을 보너기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와서 택시를 잡을 거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니, 길로 뛰어 들어가 이 택시, 저 택시 잡으며 공항까지 가냐고 묻는데 두 어린 친구들이 그렇게 하니 5분만에 택시가 한 대 잡히더군요. 고마운 마음에 50페소(1,300원)를 각각 주었더니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그 덕분에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고, 마침 엄청나게 내리던 비도 택시 안에서 피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Posted by 빵 만드는 웹기획자